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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갈등 표출되면 중재 힘들어…예방 문화 만들어야"
[인터뷰] LA 레컨실리에이시안 허현 목사 "동질 집단 된 교회, 복음의 급진성 잃어"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20.02.14 10:01

미국에서 화해·평화 사역에 주력하고 있는 허현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화해'를 뜻하는 영어 단어 '레컨실리에이션'(reconciliation)은 라틴어 '리콘실리아티오'(reconciliatio)에서 유래했다. 무언가를 복원하거나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는 뜻이다.

미국 LA에는 한인이 주축이 돼 운영하는 'reconciliAsian'(레컨실리에이시안)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미국 한인 교회에서 갈등 전환 문화의 필요성을 교육하고, 다문화 사회에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국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반도 디아스포라, 넓게는 한·중·일 동아시아인의 화해와 평화를 꿈꾸며 활동한다. 레컨실리에이션에서 뒷부분을 'Asian'으로 바꾸었다.

단체를 설립한 이는 허현 목사다. 미국 메노나이트교회 소속인 허 목사는 '화해'와 '평화'를 복음의 핵심으로 여긴다. 하지만 한국교회와 마찬가지로 미국 한인 교회에서도 이 두 가지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키워드다. 미국 한인 교회들도 분쟁으로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레컨실리에이시안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마침 지난 1월 한국에서 열린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 참석차 귀국한 허현 목사를 직접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를 2월 12일 서울 충무로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나, 어떻게 레컨실리에이시안을 시작하게 됐는지, 미국 한인 교회에서의 갈등 전환 사례가 있는지, 다문화 사회에서 교회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등을 이야기했다.

허현 목사는 미국 서부 지역 한인 교회들이 갈등 전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 제공 허현

- 이력이 조금 특이하다. 침례신학대학교를 나와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교차문화학을 공부했고. 나중에는 아나뱁티스트인 메노나이트 목사가 됐다.

정치적으로도 아주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반공 의식이 뚜렷한 교회에서 자랐다. 학교에서도 철저히 반공 교육을 받을 때였다. 가정·학교·교회에서 늘 혐오·증오·두려움을 심는 교육에 노출돼 있었다. 우리가 힘을 길러야 북한을 이길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 세례를 받고 자랐다.

신학교에 가서 아나뱁티스트를 알게 됐다. 신선했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아나뱁티스트)는 믿는 사람이니까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믿지 않는 반대편은 천국에 가지 못하니까 차라리 우리가 죽자' 같은 생각을 했다. 같은 성경을 읽고 이런 논리가 나온다는 데 충격받았다. 아나뱁티스트가 뭔지 자료를 찾아보면서 아나뱁티스트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후 군대에 가고 목회 현장으로 돌아오면서 많이 잊고 살았다. 미국 풀러신학교에 가서 윌버트 쉥크라는 메노나이트 역사학자에게 수업을 들으며, 다시 이전 기억이 떠올랐다. 원래 침례교를 떠날 생각은 없었는데, 교단 안에서 내가 자꾸 뭘 바꾸려고 하니까 듣는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차라리 교단 밖에서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메노나이트로 살기로 했다.

- LA에서 메노나이트 한인 교회를 개척한 경험도 있는데.

LA 이음교회를 2008년 개척했다. 당시 알렌 크라이더의 <초기 기독교의 예배와 복음 전도>(대장간)를 번역하면서, 나도 이런 교회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마침 한국의 교회에서 함께하던 사람 중 공동체에 함께하고 싶다고 미국으로 온 사람도 있어서, 그들과 같이 교회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좋았다. 세 가정이 서로 옆집에 살면서 한 집은 예배당으로, 한 집은 교육관으로, 또 한 집은 성경 공부 등 소모임용으로 썼다. 새로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울기도 했다. 이민자들은 원래 자기 얘기를 하는 걸 꺼리는데, 이상하게 우리 모임에만 오면 울면서 속내를 털어놓더라. 그만큼 교회를 안전한 공간으로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 그런 교회를 2011년에 떠나고, 화해·평화 사역을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교회 시작하고 처음 1~2년은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지더라. 어디든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비판도 쉬워졌다. 공동체로 살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모인 셈이다.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한다고 하니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힘들어하던 시점에 개인적으로 묘한 경험을 했다. 한번은 막내가 뭘 먹다가 목에 걸려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이 몸은 뻣뻣하게 굳어 갔다. 움직이지도 않고 숨도 쉬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 대고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고 절규했다.

그때, 그동안 여기저기서 접한,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하는 부모들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더니 거의 동시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세상에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 부모가 너무 많고, 거꾸로 부모 품을 잃는 아이도 너무 많다. 전쟁 아니면 분배 정의 문제 때문이다. 한반도 상황을 봐도 그렇지 않나. 한쪽에는 전기가 안 들어오고 먹을 게 없어 사람들이 굶어 죽는데, 한쪽에서는 음식이 남아 길에 버린다.

전쟁은 평화(peace)와, 분배는 정의(justice)와 연관이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핵심인 정의와 평화 문제로 직결됐다. 이 문제로 설교를 많이 하긴 했지만, 이제는 실제로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레컨실리에이시안을 시작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한인 사회에 메노나이트를 더 많이 노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메노나이트는 500년 동안 공동체를 이끌어 온 노하우가 있다. 레컨실리에이시안은 메노나이트가 한인 교회들에 줄 수 있는 선물이 뭘까 고민한 결과물이다.

레컨실리에이시안은 한인 교회에서 갈등 전환, 트라우마 극복 등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해 왔다. 사진 제공 레컨실리에이시안

- 레컨실리에이시안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주된 일은 갈등 전환 사역이다. 한인 교회에서도 종종 내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는 요청이 온다. 안타깝게도 이민 교회 대부분은 갈등 전환, 화해가 안 된다. 만약 교회가 건물을 갖고 있으면 교단이 와서 중재해도 안 되더라.

교회에서 갈등이 표출되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갈등에도 역동성이 있다. 최고점일 때는 중재할 수 없다. 갈등이 막 생기려고 할 때 와야 하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설마 우리 교회에 분쟁이 생기겠어?'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갈등이 빵 터진 정점에는 무슨 말을 해도 중재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소강기가 되면, 갈등이 다 해결된 줄 알고 또 요청하지 않는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 하니까 문제를 직면하지 않는다. 그렇게 잠재된 갈등이 시간이 지나면 또 표출되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다.

레컨실리에이시안은 에너지의 75%를 갈등 전환 문화를 만드는 데 쏟는다.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건강한 갈등 전환 문화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회가 직접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재를 개발하고 훈련 프로그램을 안내한다. 실제로 서부 지역 한인 교회 몇 곳에서는 목장 시간에 갈등 전환 문화를 연습할 수 있는 6주짜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더 나빠지기 전에 건강한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를 쉽게 파괴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는가. '뒷담화'다. 뒷담화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거나,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가운데 놓고 희생 제사를 지내는 행위다. 그 사람이 나가면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다. 이걸 알면 사람들이 교회 모임에 오지 않게 된다.

이것이 왜 파괴적인지 스스로 깨닫고 누군가 이런 일을 할 때 동조하지 않는 것. 그게 문화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갈등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갈등을 대하는 방법을 몰라서 무너진다.

- 한인 교회 대상으로 한 갈등 전환 사역이 주인 것 같은데, 단체 이름에 '아시아'(Asian)가 들어간다.

처음에는 한인 교회만 대상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일본 이민 교회도, 중국 이민 교회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더라. 어느 교회나 갈등이 있었다. 게다가 고맥락(high context) 문화권인 동양권 교회에서 이런 문제가 도드라졌다.

상황을 보고 대충 지레짐작해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로 파악하는 게 고맥락 문화다. 미국 같은 경우는 정확하게 말로 다 표현해야 하는데, 한국인·일본인은 그렇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있었다. 도움을 요청받아 가서 강의하다 보니까 아시아권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얼마 전에는 '이웃 사귀기 5계명'이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아프리칸-아메리칸 교회에 간다. 교회에 가면 흑인 목사님이 자신들 역사를 들려준다. 그들의 이민사를 배우는 거다. 이슬람 사원에도 가서 직접 이민사를 듣는다. 탈북민 교회, 라티노 교회에도 가서 이민사를 들었다.

누가 우리의 이웃과 원수가 누구냐고 묻는다고 치자. '우리의 원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그들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과거를 모를 때만 원수가 될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맥락을 알면 원수가 될 수 없다. 한인 교회도 멀리 선교사를 보내는데, 정작 자기 옆에 있는 멕시코 이민자들은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다문화를 얘기하는 것이다. 끼리끼리 모여 있으면 섞이기도, 서로 이해하기도 힘들다. 한인 교회가 주위에 눈을 돌리고 어떻게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주위에 사는 사람을 이웃이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이웃의 정의를 재신학화·재규정해야 한다.

젊은 관원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관원은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묻는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말씀하시고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되묻는다.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도 강도 만난 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려는 것 같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관점으로 주변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웃의 경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레컨실리에이시안은 총기 문제, 인종차별주의, 한반도 디아스포라 문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인은 필연적으로 한반도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고, 그분이 가르치신 복음이 '샬롬'이다. 나와 나 자신, 나와 타인, 나와 또 다른 피조물이 샬롬을 이루길 원하시는데, 샬롬의 복음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할지 고민하면 내가 서 있는 이 땅, 지역사회, 나라, 전 세계가 연결된다.

다양한 사역을 하는 건 그나마 이런 일에 관심 있는 한 사람이라도 더 함께하기 위해서다. 한인 교회가 누군가를 구제하는 일에는 많이 나서는데, 이렇게 장시간 노력해서 교회 문화를 바꾸는 일에는 소극적이다. 한인 사회가 워낙 보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일에 관심 두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허현 목사는 다양성·다문화가 오히려 교회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한국은 요즘 '초갈등 사회'라는 말이 유행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해외에 사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한국 사회가 이 정도로 갈라진 건 처음 본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 같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당선 전에는 사람들이 그래도 이민자에게 대놓고 욕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하니까 사람들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트럼프는 그동안 복음주의 기독교가 문제라고 지적해 온 모든 일을 다 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복음주의 기독교가 설파한 가치관을 뒤집는 일을 직접 하고 있다. 그런데도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그를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투표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기독교적 가치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기독교적 가치를 수호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에는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다.

- 초갈등 사회에서 교회는 점차 힘을 잃는 것 같다. 얼마 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이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는다.

알렌 크라이더의 <초기 기독교의 예배와 복음 전도>를 보면, 주후 3세기에 복음이 가장 빠르게 확산됐다. 복음을 전하기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왜 그렇게 빠르고 힘 있게 복음이 전파됐을까. 복음을 말로 전한 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울은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자유인과 종, 유대인과 헬라인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라고 했다. 생각해 보자. 그 시대에는 밖에서 주인과 종이었던 사람이 교회 안으로 오면 동등한 사람이 됐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 성찬을 통해 벽을 넘는 연습을 한 거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면 못 넘을 담이 없었다.

로마제국은 동질성을 원했는데, 예수는 다양한 인간의 아픔을 끌어안고 함께 고통받으셨다. 거기에 로마제국이 뒤집힌 이유가 있다고 월터 브루그만은 말한다. 그런 맥락에서 다양성과 다문화가 교회를 살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복음이 가진 역동성을 상실한 것은 교회에 비슷한 사람만 모이게 됐기 때문이다. 교회가 동질 집단이 되니 벽을 넘을 필요가 없어졌다. 넘는다고 해도 낮은 벽만 넘게 된다. 기준에 들지 못한 사람은 배제하고 잘라내면 편하지 않겠나.

- 한국 보수 개신교가 배격하는 것이 다양성·다문화다. 다양성은 교회를, 다문화는 사회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반대다. 복음에 자신이 없어서 그렇다. 빌레몬서를 보면 오네시모 이야기가 나온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나는 오네시모를 형제라고 생각하니 너도 형제라고 생각하라고 전한다. 한번은 세미나에서 "빌레몬의 아내·자식·친구·친척들은 오네시모를 뭐라고 생각할까요?"라고 물었다. 얼마 전까지 종이었는데, 바울이 어느 날 갑자기 형제라고 대하라고 하지 않나. 당시 사회상으로 보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관계망을 틀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 가진 '급진성'이다.

예수 때문에 벽을 넘을 수 있었다.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곳이 교회다.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증오를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왜 벽을 쌓고 혐오하고 배제하는지 깊게 고민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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